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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5: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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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17계 포전인옥(抛砖引玉) 벽돌을 던져 옥을 유인 해 낸다.

 

포전인옥은 제17계로 이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것으로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비슷한 것을 상대방에게 주어서 더 좋은 것을 얻어 낸다는 의미다.

 

방연의 포전인옥 계략은 식량 약탈을 미끼로 손빈의 대응을 유도하는 것이고 손빈은 포전인옥은 방연보다 한 수 위로 적을 유인하기 전에 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방연은 이로서 손빈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고 두 길로 진격한 방연의 군대는 모두 복병에 걸린다.

 

당(唐)나라 때의 시인 상건(常建)은 항상 자신의 시가 조하(趙嘏)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한번은 조하가 소주(蘇州)에 유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소주에 있던 상건은 이 기회를 이용해 조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상건은 조하가 소주에 오면 반드시 영암사(靈巖寺)에 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절의 벽에 시를 절반만 지어 적어 놓았다.

 

과연 조하는 영암사에 들렀다가 벽에 적힌 미완성의 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었고 상건은 자신의 뜻대로 조하의 시를 얻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상건이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은 격(抛磚引玉)”이라고 말했으며 이 이야기는 전등록(傳燈錄)과 역대시화(歷代詩話)에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전인옥은 삼십육계의 제17계로서 비슷한 것으로써 유인해 어리석은 적을 치는(類以誘之, 擊蒙也) 계책으로 곧 미끼로 적을 유인해 승리를 얻는 계책을 말한다.

 

포전인옥 고사의 진위에 대해 알아보면 이 고사는 당(唐)나라 때의 시인 상건(常建)과 조하(趙嘏)의 이야기이며 출전은 역대시화(歷代詩話)라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는데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고사를 실은 자료마다 문제의 시를 인용하지 않고 있으며 둘째 상건은 장안(長安)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사람으로 생졸 연대는 708∼765년이고 조하는 초주(楚州) 산양(山陽) 강소성(江蘇省) 회안시(淮安市) 초주구(楚州區) 사람으로 생졸 연대는 806∼852년(혹은 853년)이다.

상건이 죽은 후 약 40년 뒤에 조하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 고사의 진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두 시인이 영암사의 벽에 기록했다는 시의 원문을 찾아 자료를 뒤지다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발견했다.

 

나는 과거에는 이 고사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 고사를 인용한 곳마다 이 두 시인이 어떤 시구(詩句)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출처는 모두 역대시화로 돼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원문을 인용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어차피 출처가 역대시화로 돼 있으니 그 책을 찾아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청(淸)나라 사람이 편찬한 이 책은 무려 53만 자나 되기 때문에 일일이 뒤져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책에 색인이 있어서 상건과 조하를 색인에서 찾았는데 모두 세 군데에서 이 이름들을 찾을 수가 있었지만 포전인옥의 고사는 한 군데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고사의 출처가 거짓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고사도 거짓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서 다시 원(元)나라 사람의 저서인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 상건과 조하의 전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그런 고사는 없었다. 이 책은 시인들이 참가했던 과거 시험에 대한 상황을 기록해 놓았으므로 이를 통해 시인들이 어느 시대에 활동한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는 특징을 가진 책인데 이 책의 기록에 의하면 상건은 개원(開元) 15년에 왕창령(王昌齡)과 함께 등과했다.

 

개원(713∼741)은 당현종(唐玄宗) 때의 연호로 개원 15년은 727년이며 또 조하는 회창(會昌) 2년에 진사가 됐는데 회창(841∼946)은 당무종(唐武宗)의 연호로 회창 4년은 844년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고증을 할 필요가 있을까?

 

727년의 진사와 844년의 진사가 117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만날 수가 있을까?

 

만약 상건이 백 세 이상 장수를 해서 둘이 만났다고 쳐도 그가 존경하던 시인 조하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가 아닌가.

 

어떤 자료는 제파산사후선원(題破山寺後禪院)이 바로 그 시로 앞 두 연을 상건이 쓰고 조하가 뒤의 두 연을 이어 썼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설명으로 이 시는 상건이 파산사(破山寺)에 쓴 제벽시(題壁詩 벽에 쓴 시)로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으며 파산사는 현재는 흥복사(興福寺)라고 하는데 강소성 상숙시(常熟市) 우산(虞山)에 있다.

 

맑은 새벽 옛 절을 찾아드니 막 떠오른 해 수풀을 비춘다.

 

구불구불한 길은 그윽하고 고요한 곳으로 통하고 선방엔 꽃과 나무들 무성하다.

 

산 빛에 새는 기뻐 지저귀고 못에 비친 그림자 사람의 마음을 비워준다.

 

삼라만상이 다 고요한 지금 오직 풍경 소리만 들려온다.

 

淸晨入古寺 初日照高林

曲徑通幽處 禪房花木深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萬籟此俱寂 惟餘鐘磬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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