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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4: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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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9계 격안관화(隔岸观火) 강 건너 불 구경하다.

 

강건너 불구경한다는 제9계로 앉아서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뜻으로 적 내부의 갈등을 지켜보며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뜻이다.

 

손빈은 한이 위를 맞아 전력을 다해 싸우게 하고 방연의 군력을 약화시켜 전세를 제에 이롭게 한다.

 

전한(前漢) 말기의 혼란 속에서 정치적 실권자로 떠오른 조조(曹操)는 관도(官渡)의 전투에서 당시 화북(華北) 지역 최대의 실력자인 원소(袁紹)를 격파했다.

 

원소는 겨우 목숨을 보전해 도망쳤다가 조조에게 대패한 충격으로 병이 나 피를 토하다가 사망했는데 원소가 죽고 막내아들 원상(袁尙)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주(冀州)의 장관이 되자 장남 원담(袁譚)과 원상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조조는 이 틈을 타 원씨 형제들을 공격했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막강했으며 적이 쳐들어오자 단결해 대항했기 때문이었는데 조조의 책사 곽가(郭嘉)가 “본래 원씨 형제들 사이에 내분이 있었으나 우리가 공격해 오히려 그들을 단결하게 만든 것으로 우리가 여기에서 물러가면 그들은 반드시 다시 싸우게 될 것이니 그들이 싸워 서로 피폐해질 때를 기다려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계책을 내어놓았는데 즉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일단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곽가의 계책에 따라 조조는 군대를 철수시켰다.

 

눈앞의 적군이 물러가자 과연 원씨 형제는 다시 기주를 쟁탈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해 결국 장남 원담이 기주를 차지했고 원상은 둘째 형 원희(袁熙)에게 피신했다.

 

조조는 형제로부터 고립된 원담을 먼저 쳐서 멸망시키고 원희와 원상은 노합하(老哈河)와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거주하던 소수민족인 오환(烏桓)과 손을 잡고 재기를 도모하려 했다.

 

207년 5월 조조는 원씨의 잔존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오환의 근거지인 유성(柳城)을 공격했으며 여기서 패한 원씨 형제는 북쪽으로 달아나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피신했는데 계속 공격을 하면 이들이 연합해 저항할 것은 분명할 것으로 조조는 이들을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공손강이 원씨 형제의 머리를 보내올 때까지 기다리자며 군대를 허창으로 철수시켰는데 역시 격안관화의 전략이었다.

 

과연 조조의 예측대로 공손강이 사신을 파견해 원씨 형제의 머리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며 원씨 형제가 몸을 의탁해 오자 공손강은 고민에 빠져 한편으로는 조조의 군대가 공격해 올까 봐 두렵고 한편으론 원씨 형제에게 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공손강은 차라리 강한 조조의 편이 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원씨 형제의 머리를 들고 조조의 편이 된 것으로 이로써 조조는 화북 통일 작업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조조는 당시 중국의 13개 주 가운데 연주(兗州), 기주(冀州), 청주(淸州) 유주(幽州), 병주(幷州) 등 다섯 주를 차지했는데 이 지역은 인구가 가장 많은 중원(中原) 지역이었기 때문에 천하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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