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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4: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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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기습과 정면공격을 구사하다.

 

암도진창은 제8계로 한 대의 한신이 길을 닦는 척 하면서 다른 곳을 공격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정면에서 적을 견제하고 우회로 돌아 기습공격을 한다는 뜻으로 이 계책은 성동격서와 비슷하지만 달라 성동격서에서 중요한 곳이 공격 지점이라면 암도진창에서는 공격 노선이다.

 

손빈은 이 계략을 이용해 한의 군신들과 방연을 속이고 상당을 함락시켜 한을 떠난다.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도처에서 진(秦)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는데 초(楚)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도 반란을 일으켜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를 찾아 회왕으로 옹립하고 초나라를 재건했다.

 

변방의 하급 관리인 정장(亭長)에 불과했던 유방(劉邦)도 소규모의 반란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항량에 가담했는데 얼마 후 항량은 진나라와 싸우다가 전사했고 항우(項羽)가 실세로 부상했다.

 

회왕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인 관중(關中) 땅을 먼저 정복하는 사람을 그곳의 왕으로 삼겠다고 공약했는데 함양에 맨 먼저 당도해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 낸 사람은 유방이었다.

 

뒤늦게 당도한 항우가 유방을 치려고 하자 유방은 살아남기 위해 관중 땅을 항우에게 바쳤으며 관중을 접수함으로써 천하를 쟁패하게 된 항우는 BC 206년 서초(西楚)를 건국하고 스스로 초패왕(楚覇王)이라 칭했는데 이로써 진나라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지 16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고 천하는 항우의 손아귀로 떨어진 듯 보였다.

 

초패왕 항우는 모사 범증(范增)의 계책에 따라 초회왕을 의제(義帝)로 옹립하고 18명의 제후왕을 봉했고 역시 범증의 계책에 따라 위험인물인 유방을 중원에서 영원히 쫓아내기 위해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봉하고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해당하는 한중 땅으로 보냈다. 항우는 또한 유방이 한중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길목에 해당하는 관중 땅을 나누어 진나라에서 투항한 장수인 장한(章邯)을 옹왕(雍王)으로 사마흔(司馬欣)을 색왕(塞王)으로 동예(董翳)를 책왕(翟王)으로 각각 봉하고 주둔시켜 유방을 감시하고 그의 진출을 막으라는 임무를 주었다.

 

힘이 약한 유방은 항우와 관중에 주둔해 있는 세 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중 땅과 중원 땅의 유일한 통로로 알려진 잔도(棧道)를 불태워 중원으로 다시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물론 이는 모두 장량(張良)의 계책에 따른 것으로 잔도를 불태워 버리면 관중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유방에게 장량은 “관중에 들어가는 길은 잔도 말고도 옛길인 진창이 있다”고 말했다.

 

잔도란 잔각(棧閣) 또는 각도(閣道)라고도 하는데 섬서성,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 등 산간 오지의 절벽에 구멍을 뚫어 나무로 다리를 놓아 만든 일종의 도로로서 당시 서남 지역의 중요 교통로였다.

 

한중에 들어간 유방은 한신(韓信)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병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여 힘을 축적해 수년의 준비 끝에 군사가 강해지자 유방은 중원 정벌을 결정하고 한신에게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한신은 “천하를 얻으려면 관중으로 다시 들어가 동쪽을 정벌해 초나라와 한나라가 양립하는 형세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한신의 계책은 공공연히 잔도를 보수해 감시의 눈길을 잔도로 집중시킨 뒤 실제로는 진창을 통해 나가는 것이었다.

 

유방은 번쾌(樊噲)와 주발(周勃)에게 1만 군사를 주어 석 달 내로 다리를 보수토록 했으며 다리를 놓는 일은 큰 공사였기 때문에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작전을 변경해 은밀히 번쾌와 주발을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감독으로 파견했으며 잔도 보수 공사가 계속되자 관중에 주둔하고 있던 장한 등은 몹시 긴장해 군사를 잔도 쪽에 집중시켰다.

 

유방과 한신은 번쾌, 주발 등과 수만 명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옛길인 진창을 통해 진격해 순식간에 관중 땅을 점령했고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항우의 휘하 제후들을 정벌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최종적으로는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한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오는데 공공연히 잔도를 보수하고 몰래 진창을 통해 관중 땅으로 나갔다는 이야기에서 암도진창(暗渡陳倉)이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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