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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4: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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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1계 만천과해(瞒天过海)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

 

만천과해는 제 1계로 계책의 이름은 당나라 때 생겼으나 춘추전국시대에 더욱 많이 사용됐다.


하늘은 황제를 가리키며 바다는 극복하기 어려운 큰 어려움을 말한다.


이 계책은 적에게 계략을 밝히는 대신 그 속에 진짜 계략을 숨겨두어야 성공할 수 있다.


손빈은 이 계책으로 초왕과 방연을 속이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사마염(司馬炎)이 위(魏)나라를 찬탈하고 세운 진(晉)나라는 265년부터 420년까지 156년간 존속했는데 주(周)나라가 서주와 동주로 나누어졌듯이 진나라도 서진과 동진으로 나누어졌다.


전반 52년 동안은 수도를 서쪽의 낙양(洛陽)에 두었기 때문에 서진(西晉 265∼316)이라고 하고 후반 104년 동안은 수도를 동쪽의 건강(健康 남경(南京))에 두었기 때문에 동진(東晉 317∼420)이라고 한다.


서진은 귀족들의 사치와 부패와 내란으로 말미암아 소수민족들에 의해 316년에 전복됐고 다음 해인 317년에 황족인 사마예(司馬睿)가 건강에서 다시 진나라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동진이다.


이 동진 왕조와 때를 같이해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氐), 강(羌) 등의 다섯 개 이민족(五胡)이 16개의 나라를 세워 중국의 북부를 장악했는데 이를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고 한다.


420년부터 중국은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접어글어 이 기간 동안 남방에서 동진이 멸망하고 송(宋 420∼479), 제(齊 479∼502), 양(梁 502∼557), 진(陳 557∼589)의 4개 왕조가 차례대로 들어섰고 북방에는 오호십육국이 멸망하고 북위(北魏 386∼534), 동위(東魏 534∼550), 서위(西魏 535∼556), 북제(北齊 550∼577), 북주(北周 556∼581)의 5개 왕조가 들어섰다.


581년 양견(楊堅)이 북조의 마지막 왕조인 북주(北周)의 정권을 찬탈하고 수(隋)나라를 세웠으니 이이가 바로 수문제(隋文帝)다.


수문제 양견은 정열적으로 정사에 임해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한편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陳)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陳叔寶)는 밤낮으로 주색과 유흥에 빠져 정사를 등한히 하고 있어 나라의 장래를 우려한 대신 장화(章華)가 황제가 주색에 빠져 정치를 외면하는 것을 꾸짖고 이의 시정을 촉구하는 상서를 올렸다가 도리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수문제는 복야(僕射)인 고경(高熲)에게 진나라를 멸할 계책을 묻자 고경은 “강남의 곡식이 강북보다 먼저 익으며 강남의 수확철에 우리가 출병을 해 진나라를 친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면 저들은 분명 수확을 포기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우리의 공격에 대비할 것이나 우리는 출병을 하지 않으며 이런 식으로 몇 년간만 하면 우리가 공격한다는 말을 믿지 않고 더 이상 우리의 공격에 대비하지 않을 것으로 그때 가서 갑자기 장강을 건너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될 것이고,

 

또 한 가지 강남은 양식을 우리 북방처럼 토굴을 파고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갈대나 대나무로 엮은 창고에 저장하니 몇 년 동안 반복적으로 몰래 사람을 보내 불을 질러 버리면 진나라의 국력은 크게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수문제는 고경의 계책을 받아들여 무려 7년 동안 준비를 했고 588년 겨울 진나라 토벌에 나섰다.


수문제는 진숙보의 죄목 20가지를 열거한 전단 30만 부를 강남(江南) 지방에 뿌리고 아들 양광(楊廣 후의 수양제(隋煬帝))를 원수로 임명하고 하약필(賀若弼)을 행군총관(行軍總管)으로 임명한 후 공격 명령을 내렸다.


하약필이 이끄는 수나라 군대는 양자강(揚子江) 북쪽 연안 광릉(廣陵)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했는데 즉시 강을 건너 작전을 개시하지 않고 다른 계책을 세웠다.


하약필은 부하 군사들을 시켜 상인으로 가장해 배를 대량으로 구입한 후 대부분의 배를 숨기고 강변에는 단지 열몇 척의 부서진 배만을 남겨 두자 진나라 왕 진숙보는 수나라 군대가 강 맞은편에 다다른 것을 알고는 몹시 놀라고 당황했으나 수나라 진영에 부서진 배 몇 척만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점차로 안심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수나라군이 주둔했던 강변에 갑자기 깃발이 나부끼고 창칼을 높이 쳐든 대규모 부대가 행동을 시작하자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본 진숙보는 바짝 긴장해 모든 군대를 장강(長江) 남안에 배치시켰지만 수나라 군대는 빈번하게 수비 임무를 교체했으나 도강작전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나라는 수나라가 방어를 위해 온 것으로 인식하고 방비의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증원부대를 철수시키자 하약필은 이 소식을 탐지한 후 강변에 말을 풀어 사냥을 시작했다. 진나라는 수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다시 방비를 강화했으나 수나라 군대는 사냥만 했을 뿐 공격을 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나라 군대는 마침내 안심하게 됐으며 그때부터 진나라 군대는 순찰을 돌지 않았으며 진숙보는 술을 마시며 즐기기까지 했다.


마침내 공격을 할 때가 되었음을 파악한 하약필은 야간에 군대를 이끌고 미리 준비한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넜고 아무런 방비도 없이 꿈에 취해 있던 진숙보는 꼼짝 못 하고 당하고 말았다.

동이 틀 무렵 하약필의 군대는 장강 남쪽의 진나라 군대를 모조리 섬멸하고 수나라 군대는 순조롭게 남진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역사상 장기간의 분열 시기였던 남북조시대를 마감했다.


만천과해(瞒天过海)는 이처럼 거짓으로 진실을 숨기는 계책으로 위장과 거짓으로 아군의 집결과 공격 시간을 숨김으로써 방비가 해이해진 상대를 불의에 습격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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